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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유학을 결심하다. 본문
개강 3주만에, 그리고 2주 간의 고민 끝에 미국 대학원 유학을 결심했다.
갑자기 대학원 진학이라니, 나 스스로도 상당히 갑작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지만도 않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미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유학이라는 것이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였고, 별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중학생 때 미국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또래 학생들을 보면서 미국 유학을 가는 게 나의 로망이었다. 한국 학생들보다 훨씬 자유로워 보이고, 프롬도 부럽고, 영어로 생활하며 사는 세상을 동경했던 것 같다. 하지만 '미국 유학'을 검색하니 나오는 건 온갖 광고뿐 어떻게 정보를 찾아야 할지도 몰랐고 유학원을 찾아갈 깜냥도 없었다. 그렇게 유학은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인줄로만 알았다.
인생이란 작은 경험과 선택들의 결과임을 실감하게 된다.
대학교 2학년 때 미국에 갔을 때 여러 유학생들을 만나게 될 일이 있었다. 국적도 다양했는데, 제일 와닿았던 건 역시 한국인 유학생들이었다. 특히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나오고 대학교는 유학을 왔다는 친구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내 주변에 해외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마친구아들 정도 사이인 지인들 중에 유학 중인 사람이 잇었지만, 나와 아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유학한다는 얘기보다는 내 눈앞에 서있는 유학생의 얘기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졌다.
사실 이 때는 그냥 "아...! 사람들이 진짜 해외유학을 가는구나...!" 정도였다면, 머리를 띵하게 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교환학생을 가있을 때 친구를 만나러 당일치기로 다른 지역에 놀러간 적이 있다. 이제 막 개강한 친구의 학교를 둘러보며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한국어로! 이 멀고 넓은 타국에서 내 한국 이름을 외칠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알고보니 그 사람은 내 고등학교 동창 A였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이곳으로 편입을 해 첫 학기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딱 이 시각에 이 곳에서 운명처럼 만났을까, 신기함에 정신을 못차리는 한편, 학교 선정, 비용, 편입 준비 등 이 모든 것을 혼자 알아보고 유학을 결심한 A의 결정이 너무나 멋있고 대단했다. 혼자 박람회도 찾아가고 유학원도 찾아가며 적극적으로 알아봤다던 A의 얘기를 들으니, 어릴 적에 방법을 모르겠다며 관둔 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내가 괜시리 부끄럽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 작은 경험들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종종 해외 유학중인 유튜버들에게로 이끌었다. 그둘 중 몇몇은 커리어 변경을 위해 뒤늦게 유학길에 오른 경우도 있었고,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용으로 유학을 하고 있기도 했다. 유튜버를 통해 나는 "생각보다 유학생이 많다", "생각보다 늦지 않았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 2019년엔가 "혹시 모르니(?) GRE 준비를 할까"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유학 갈 마음이 있기는 했던건지, 가면 무슨 전공을 하고 싶었던건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막연히 GRE 를 생각하며 GRE 후기와 유학생활 수기들을 찾아봤더랬지... (<-사실 이 부분은 완전히 잊고 있다가 요즘 GRE와 미국 유학생활 정보를 찾다보니 이미 읽어본 사이트가 너무 많아서 알게 됐다.)
그리고, 교환학생 때 우연히 중국인 유학생과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이미 몇 년 전 교환학생으로 이 학교에 왔다가 학교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편입을 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 중국인의 영어는 더듬더듬 말하는 수준이어서 내멋대로 교환학생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속으로 수업 걱정까지 하던 차였다 . 그런데 이미 잘 다니고 있는 대학도 포기하고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생활해야 하는 이곳에 뛰어들었다고 하니, 그 용기가 무모한 것 같으면서도 참 대단했다.
약 4년에 걸쳐 쌓인 이 경험들이 모이고 모였다가, 명확한 계기를 만나자 한꺼번에 폭발해버린 것 같다. 사실 이 계기라는 것도 웃기다. 이 또한 작은 경험들과 선택들이 모여 생긴 계기이니 말이다.
결국 나는 하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아마 이 모든 계기의 시작은, 이번에도 그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인턴이 끝나갈 무렵, 당시 나는 진로를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막 정한 상태였다. 그간 웹개발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유는 단지 누구나 좋아할 것 같아서였다.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인데다 남들도 좋아하기까지 하면 연봉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튼 여러 사람들과의 얘기 끝에 프론트엔드는 "누구나"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튜브에서도 프론트엔드 개발자들의 영상을 많이 찾아보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놈의 알고리즘은 차례차례 UX Design과 UX Researcher의 영상도 보라며 내 피드에 띄워주었다. 그리고, 나는 영상 썸네일을 보자마자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난 무엇을 만들던 항상 사용자 경험에 관심이 많았다. 프론트도 어느 정도는 이런 의미에서 좋아했던 것 같다. 다만 이런 관심을 어떻게 밥벌이에 이용할 수 있을지 몰랐던 것 뿐.
하지만 나는 좀 더 확신이 필요했고, HCI 연구를 진행하는 랩실에 인턴으로 지원했다. 연구에 인턴으로 참여하고나서 이 분야에 확신을 갖기까지 채 2주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사용자 경험을 얻기 위해 연구를 설계하고 이를 제품에 반영하는, 이 재밌는 일을 밥벌이로 할 수 있다니! 물론 안다. 장밋빛 같은 직업은 없고 다 나름의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똑같이 힘들 거, 이왕이면 재밌는 거 해야지 않겠냐는 것이 7살 때부터 해온 생각이다. (진짜다. 다 기억 난다.) 비록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의 집약체가 여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년 간 흥미와 적성을 찾아 돌아다니기만 하는 내 자신이 미웠는데, 사실 이 모든 것들에 한가지 교집합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후의 과정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건지, 고민할 여지조차 없었던건지 모르겠다.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 유학에 대한 충격들(?), 자본과 기술을 선도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은 일, 아무리 안락해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다짐, 연구경험과 공부의 필요성 등... 이 모든 생각들이 마치 빅뱅처럼 한번에 터져서 결국 유학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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